전쟁 드라마엔 스펙터클 밖에 없다

게시 날짜: 2010/06/25, 카테고리: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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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반성도 고민도 없는 위험천만한 전쟁 블록버스터

‘공통의 기억’은 때로 집단 무의식을 만나 다양한 반응들을 이끌어낸다. 하나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기억하는 방식에서 그 차이점을 갖는데, 적어도 한국에 있어서 ‘한국전쟁’이라는 이슈는 그 방식에 있어서 다른 공통의 기억과는 스펙트럼의 궤를 달리 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다. 한국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을 재현해왔다. 과거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 <군번없는 용사> 등 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를 비롯,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 등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보여준 영화까지 각각의 영화들은 전쟁이라는 감정적 스펙터클과 그 안에서 끝나지 않은 과거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우리안의 전쟁’을 경험하게 했다. 현대 영화에 이르러서는 <쉬리>나 <공동경비구역JSA>와 같은 상업적 블록버스터의 형태로, <수취인 불명>과 같은 드라마, <간첩 리철진>이나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코미디 장르로 전쟁이라는 ‘사실’의 다양한 기억 방식을 보여주었다.

포화속으로

▲ 드라마 ‘포화속으로’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한국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데 있어 감독들은 하나의 고민을 더하게 된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이슈를 다룸에 있어 역사적 관점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하는 문제에 더불어 영상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한 관객들의 기대치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하는 문제. 전쟁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몸으로 각인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그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한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한국 전쟁영화에는 전쟁 트라우마로 인한 감정적 스펙터클에, 대규모 ‘실사’ 전투씬이라는 시각적 스펙터클 요소가 결합되었고, 그 결합은 필요한 자본의 규모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다.

6.25 60주년을 맞이하여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포화 속으로>, KBS <전우>, 그리고 MBC <로드넘버원>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 전쟁 소재 영화/드라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상영/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와 영화는 영상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기반으로 사실적 전투씬이 등장하는 ‘포스트 <태극기 휘날리며>’의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문제는 제작자를 괴롭혔던 테크놀로지와 자본구성의 성공이라는 그늘이 또 다른 소외를 낳고 그로 인해 발생한  ‘소비될 만한’ 시각적 스펙터클이란 함정은 6.25를 ‘전쟁 자체’가 아닌 ‘전투’로 축소시킨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땅에서 전쟁이라는 소재는 과연 ‘정치적인 민감함’에서 자유로운가. (헐리웃에서처럼) 전쟁이라는 좋은 소재를 선망했던 감독/제작자들이 회심의 역작처럼 들고 나올 정도로 제작 가능성을 가로막았던 두 가지 장애물들이 제거된 것일까. <포화 속으로>나 <전우> 모두 전쟁 액션 영화/드라마라는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아직도 현재성을 띠고 있는 (6.25라는) 전쟁이 주는 휴머니즘 붕괴와 그로 인한 비극성이 전쟁이라는 소재에 대중들이 열광하고 창작자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 하지만 문제는 콘텐츠의 2차적 소비에 있다.

전우

▲ 드라마 ‘전우’.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가깝게 캐서린 비글로우의 <허트 로커>에서 알 수 있듯 모든 전쟁 영화/드라마라고 해서 전쟁을 부추긴다거나 전쟁을 벌이는 대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보수성을 띠지는 않는다. 하지만 창작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것이 그것을 수용하는 사회의 메커니즘에 의해 그 콘텐츠의 영향이 결정되기도 한다.

문제는 남/북간의 서로 벌인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하는데 그 대상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 드라마에서 즐겨 쓰이고 있는 소재인 테러리즘의 경우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나 이슬람원리주의들, 알카에다 등 국가로서의 존재가 아닌 테러리즘 단체 및 조직을 그 대상을 하고 있다. 이들은 통일의 상대라던가, 대화의 대상이라기보다 응징해야할 적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그렇게 발생하는 실재적 위협은 세계 경찰국가로서 미국의 존재와 행위에 큰 힘을 보태주고 있다. 기존 전쟁 영화 콘텐츠와 현재 한국에서 소비되고 있는 전쟁 콘텐츠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여기서 발생한다. 전쟁의 상대자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그 대상이 국가이며 현 정권에 의해 천안함 침몰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 당하고 있다는 점.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고민 이외에 ‘전쟁 발발 이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국가가 전쟁을 통해 국민들을 단합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미 전쟁이 일어난 마당에 전쟁에 이기기 위한 노력 이외의 것은 이적행위로 치부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방식의 대부분이 그렇다.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를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은 굉장히 민감하고 어려운 일이며 또 그것은 대중들이 ‘전쟁영화’에서 기대하는 부분과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므로. 자연스레 ‘전쟁 중인 인간’을 보여주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왜’라는 질문은 멜로의 외피 혹은 전우애, 희생, 단결과 같은 감상적인 소비 가치에 묻혀버리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형제, 가족 간의 비극, 혹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와 별개로 고난을 당하게된 주인공의 모습들은 실제로 형제끼리 총부리를 겨눴던 경험과 만나 대중들로 하여금 강력한 ‘동일시'(sympathy)를 이끌어낸다. 그것은 다분히 한국적인 특성이다. ‘왜’라는 논쟁이 거세되고 단지 시각적, 감정적 스펙터클만이 존재하는 전쟁 콘텐츠는 (적어도 한국에선) 상존하는 대상에 대한 ‘위협’과 그를 극복하기 위한 ‘안보’의 논리와 만나서 폭발적으로 증폭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천안함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효과적으로 이용된 예가 또한 있지 않은가.

‘왜’, ‘어떻게’라는 논쟁 없이 단지 스펙터클로 소비되는 전쟁은 마치 게임 시나리오 공모하듯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를 공모하는 일로 연결된다. 이런 상황에 서울시교육청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쟁 시나리오를 공모하고 있다는 소식은 대중들에게 보여질 전쟁이라는 콘텐츠가 단지 소재로서만 소비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든다. 중요한 점은 그 콘텐츠 자체가 가지는 사상이나 균형감각 같은 것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소비하고 흡수하는 사회적 메커니즘과 정치 문화적 담론에 있는 것이니 말이다. 토론과 이견이 거세된, 가스통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스펙터클로 보기를 권해지는 전쟁이 그리 달갑지 않은 건 전쟁 그 자체 이외에,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반성, 그리고 ‘6.15 선언’ 등 어떻게 전쟁을 막을 것인가라는, 시각적 스펙터클만이 아닌 현실적인 콘텐츠와 담론이 어느 순간엔가 실종되어 버린 것 때문이기도 하다.

출처 : http://www.mediatoday.co.kr / 황정현(영화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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