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라이벌

게시 날짜: 2010/06/07, 카테고리: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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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상에 경쟁은 늘 있기 마련이고, 시대를 한탄할 사람도 많다. 지난겨울 국민들을 열광시켰던 김연아와 일본의 대표 선수 아사다 마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눈물의 은메달을 안으며 “김연아가 은퇴하더라도 득점(세계기록)은 남아 있다. 경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오는 말했다. 모두들 다 알다시피 둘의 경쟁의 역사는 길다. 그리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하필 김연아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 운이 없다고.
이뿐이랴, 중국 현대사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 두 사람으로, 서로 힘을 합쳐 일본을 물리쳤지만 그 후에 서로 권력을 차지하고자 싸웠던 장제스 ․ 마오쩌둥에서부터 1970년대 한국 가요계의 라이벌 남진 ․ 나훈아,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두 신화,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도 대표적인 라이벌이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나 같은 보통 사람이 가장 가슴 아프게 공감할 수 있었던 살리에리와 천재 모차르트가 있다.

살리에리 VS 모차르트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이탈리아의 작곡가로 모차르트보다 6년 빠른 1750년에 태어났다. 영화 「아마데우스」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와 동시대 인물로 궁정 악장의 위치에까지 올랐으나 모차르트의 명성에 가려 오늘날 대중들에게는 그의 음악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에 대한 정보는 ‘살리에리 증후군’과 같이 모차르트와 연관된 특징만 많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살리에리의 작품이 매우 유명했으며 18세기 말 19세기 초 클래식 음악계에서 살리에리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한다. 또한 슈베르트를 가르친 선생님이자 베토벤의 여러 선생님 중 한 명이었던 살리에리는 작곡가로서, 선생님으로서 활발하게 활약했다.
그러나 4살 때 협주곡 작곡, 7살 때 교향곡 작곡, 12살 때 오페라 작곡, 13살 때 르네상스 성악의 진수이자 대규모 합창곡인 알레그리 미제레레를 채보한 천재 모차르트에 비하면 당시 궁정 악장이던 살리에리도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살리에리는 음악 활동을 반대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음악을 하게 되었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 궁정 악사의 자리까지 오른, 천재(天才)를 시기하는 준재(俊才)였던 것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신이여, 왜 내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 주시고 그것을 만드는 재능은 주지 않으셨습니까?”라며 신을 원망하던 살리에리.
가지지 못한,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 그리고 노력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것 앞에서의 좌절.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범인이기에, 모차르트의 음악을 좋아하기는 해도 인간적으로는 살리에리의 마음에 더 공감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가 1등은 둘째 치고 2등은 또 얼마나 해봤는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그로부터 약 2백 년 전!

16~17세기 연극계에도 세기의 라이벌이 있었으니 그중 하나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책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심지어 만화로라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셰익스피어가 바로 그다.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그 셰익스피어. 그에게도 라이벌이 있었다.

학창 시절,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경쟁 관계에 빗대 셰익스피어와 벤 존슨(1988년 올림픽 당시 약물 문제로 금메달 박탈당한 육상선수 아닙니다^^;)을 설명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 평론가인 벤 존슨은 제임스 1세의 연금을 받은 사실상 최초의 계관시인이었고 살리에리는 궁정음악가였으며, 결국 각각 다른 천재에 의해 2인자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영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영화 속의 살리에리처럼 벤 존슨이 셰익스피어를 질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벤 존슨이 초고를 거의 완벽하게 써 한 줄도 지우지 않고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한 셰익스피어에게 ‘한 천 줄쯤 지웠으면 좋았겠다’고 비평한 것은 유명하다. 셰익스피어는 한 번 대사를 쓰면 절대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2백여 년 뒤에 태어난 작곡가 모차르트도 초고를 거의 완벽하게 쓰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벤 존슨과 셰익스피어의 관계를 위와 같이 도식화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셰익스피어보다 8살 아래의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벤 존슨은 영화와 같이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지는 않았다. 작가일 뿐만 아니라 비평가이기도 한 벤 존슨은 셰익스피어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와 가깝게 지냈으며(셰익스피어는 벤 존슨의 대표작 「기질 속의 인간」 등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먼저 세상을 뜬 친구를 추도하는 송시 “친애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선생을 추모하며”에서 셰익스피어에 대한 애정을 토로하기도 하고 셰익스피어를 일컬어 “한 시대가 아닌 만세를 위한” 작가라고 평한 바 있다.

이들이 활약한 엘리자베스 시대는 극예술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이후 제2의 황금기였다. 당시 영국인들은 우리가 주말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골라 보듯 글러브, 포춘, 로즈, 블랙프라이어즈 등 여러 극장에서 연극을 즐겼으며, 수많은 극장들이 생겼던 만큼 선택의 폭도 넓고 다양했다. 셰익스피어 외에도 크리스토퍼 말로우, 토마스 키드, 로버트 그린, 존 마스턴, 토마스 미들턴 등 엘리자베스-제임스 1세 시대에 쏟아져 나온 극작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벤 존슨도 이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4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셰익스피어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작가로 신화화되는 동안 동시대의 기억할 만한 극작가들은 셰익스피어의 그늘에 가려졌다.

벤 존슨은 스스로 노력하여 학덕과 사회적 지휘를 획득한 인물이었다. 집안이 가난했던 그는 장학생으로 명문 웨스터민스터 학교를 다녔고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포기한 뒤에는 벽돌공으로 일했으며 군대에 들어가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연기자 겸 극작가가 되었다. 해박한 학식을 가지고 고전적 전통에 입각하여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낭만적 작풍에 대립하는 일파를 이룬 그는 단순한 문인이 아니었다. 그는 문단의 중심적인 존재로 각광받으며, 영국 최초로 일군의 문학파를 이끈 문단의 대부 격인 사람이었다. 동시대 사람들은 벤 존슨을 성실하고 수준 높은 극작가로 평가했으며 국왕 제임스 1세는 1616년, 존슨에게 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영국의 대문호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 ‘셰익스피어가 아닌 모든 것’이라는 후대의 평가는 그의 작품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작품이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평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평면적인 평가로 두 시인 간의 우열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존슨의 희곡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전혀 다른 것이다. 존슨 희곡의 진수는 풍자 희극에 있다. 그는 17세기 당시 자본주의 대도시로 급성장하던 런던의 사회상을 풍자하는 ‘도시 희극’으로 유명하다.
존슨의 희곡은 도시 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금전, 권력, 성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이러한 도시 희극은 뚜쟁이, 식객, 사기꾼, 창녀 등을 소재로 삼아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그려냈다. 그의 작품들은 17세기 초 이미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하여 자본주의적 상업주의가 팽배한 런던을 사실주의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인간의 탐욕과 대도시의 생활사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시민 생활에 대한 사실적이며 냉혹한 묘사와 통렬한 풍자는 당시 사회적 위선에 시달린 민중들의 환영을 받았다. 존슨의 희극이 근래에 들어 재평가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존슨이 풍자하는 인간의 탐욕과 대도시의 생활상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벤 존슨>

물론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고전적인 틀을 벗어난 창의적인 작가이면서, 시공간을 뛰어넘는 주제를 입체적인 등장인물을 통해 보여준 훌륭한 작가로 남아 있다. 벤 존슨의 가치를 되새기는 것이 경쟁자였던 셰익스피어의 가치를 끌어내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1등의 화려한 명성에 가려 우리가 놓친 것들을 거들떠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길게 이야기해봤자 무엇하겠는가? 결국 희곡은 무대 위에 올리기 위해 씌어진 것이고,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그들의 작품이 남아 있다. 당장 상연되는 공연을 볼 수 없다면 우선 그들의 희곡을 읽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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